놀란 아레나도는 왜 옵트아웃을 하지 않았을까?
놀란 아레나도가 세인트루이스에 잔류했습니다. 2022시즌이 끝나고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아레나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FA 시장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레나도의 기존 계약은 2019시즌을 앞두고 당시 소속팀이었던 콜로라도 로키스와 맺었던 8년 2억6000만 달러의 계약이었습니다. 2019시즌 종료 후 FA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FA 시장에 나오지 않고 대형 연장계약을 맺은 셈이었습니다. 물론 아레나도는 매년 골드글러브를 타내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입니다. 하지만 모든 콜로라도 타자들에게는 일명 ‘산동네 타자’라는 의문이 붙었기 때문에 공격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의문부호가 항상 붙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만 해도 너무 큰 규모의 계약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레나도는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고 몸값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2020시즌이 끝난 후 콜로라도에서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말이 많은 트레이드였지만, 아레나도에게 남은 계약은 6년 1억9900만 달러였고(5000만 달러 연봉보조가 있으므로 실제 세인트루이스는 6년 1억4900만 달러만 지급함), 35세에 끝나는 계약이었기에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서는 횡재였습니다.
아레나도는 세인트루이스 이적 이후에도 맹활약했습니다. 산동네에서 내려온 것에 비해, 타격 성적은 예상만큼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수비 실력은 여전했죠. 결국 올해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수상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아레나도의 행보는 슈퍼스타답지 않았습니다. 우선 2021시즌이 끝나고, 기존 계약에 1년 1500만 달러를 추가하게 됩니다. FA를 1년 늦춘 연장계약을 맺은 것은 놀랍지 않으나 연봉이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에 아레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2022시즌 후 행사할 수 있는 옵트아웃 권리도 포기했습니다. 현재 아레나도에게 남은 계약은 5년 1억4400만 달러입니다. 이렇게까지 과열된 시장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31세 시즌을 마친 아레나도는 7년 2억5000만 달러 계약 정도는 쉽게 따낼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과열된 분위기를 반영하면 애런 저지의 9년 3억6000만 달러까지는 아니더라도, 게릿 콜이 양키스와 맺었던 FA계약인 9년 3억2400만 달러는 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레나도가 옵트아웃을 포기함에 따라 이런 논의 역시 무의미해졌습니다.
아레나도의 커리어 성적입니다.
경기 | 타석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OPS+ | wRC+ | 홈런 | 타점 | fWAR | bWAR | |
2013 | 133 | 514 | .267 | .301 | .405 | .706 | 81 | 77 | 10 | 52 | 1.8 | 2.5 |
2014 | 111 | 467 | .287 | .328 | .500 | .828 | 115 | 113 | 18 | 61 | 2.6 | 3.6 |
2015 | 157 | 665 | .287 | .323 | .575 | .898 | 124 | 121 | 42 | 130 | 4.5 | 6.3 |
2016 | 160 | 696 | .294 | .362 | .570 | .932 | 129 | 126 | 41 | 133 | 5.9 | 5.9 |
2017 | 159 | 680 | .309 | .373 | .586 | .959 | 130 | 130 | 37 | 130 | 6.1 | 6.7 |
2018 | 156 | 673 | .297 | .374 | .561 | .935 | 133 | 133 | 38 | 110 | 6.2 | 6.4 |
2019 | 155 | 662 | .315 | .379 | .583 | .962 | 131 | 130 | 41 | 118 | 6.5 | 7.3 |
2020 | 48 | 201 | .253 | .303 | .434 | .738 | 86 | 76 | 8 | 26 | 0.7 | 1.5 |
2021 | 157 | 653 | .255 | .312 | .494 | .807 | 119 | 113 | 34 | 105 | 4.1 | 4.1 |
2022 | 148 | 620 | .293 | .358 | .533 | .891 | 154 | 151 | 30 | 103 | 7.3 | 7.9 |
합계 | 1384 | 5831 | .289 | .346 | .535 | .881 | 124 | 130 | 299 | 968 | 45.7 | 52.2 |
아레나도는 옵트아웃 포기로 1억~2억 달러 정도를 날린 셈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결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을텐데, 아레나도의 그간의 행보를 살펴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아레나도는 2020시즌이 끝나고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당시 소속팀 콜로라도는 아레나도를 보유하고도 전력 보강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왔고, 결국 아레나도가 팀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며 트레이드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 결국 콜로라도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내보내게 됩니다. 아레나도를 트레이드하면서 반대급부로 받은 유망주들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선수들이었던 데다가, 연봉보조까지 해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콜로라도는 아레나도가 왜 팀에 불만이 있었는지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후 아레나도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나 베테랑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팀인만큼 우애가 돈독했죠. 웨인라이트, 몰리나로 대표되는 세인트루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클럽하우스 리더십이 대단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비록 아직 아레나도가 합류한 후 우승한 적은 없으나, 바뀐 팀의 분위기에 매료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런 감정을 증명하듯 아레나도는 지난 오프시즌 때 이미 기존 계약에 1년 1500만 달러 계약을 추가한 바 있습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황당한 수준의 규모로 말이죠. 카디널스 구단에서 이런 방식의 연장계약을 먼저 제안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당장 옵트아웃 권리를 가졌고 계약 자체는 5년 남은 상황입니다. 1년을 덧붙이는 제안은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이른 시기입니다. 게다가 금액 자체가 터무니 없이 낮으니, 이런 제안은 팀에서 먼저 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레나도가 먼저 계약을 이 정도 규모로만 늘리고 싶다고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죠. 팀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움직임입니다.
아레나도의 옵트아웃도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보아도 기존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이득인 상황에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은, 팀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각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아레나도가 계약을 1년 연장한 것에서, 옵트아웃은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이미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레나도는 2022시즌이 커리어하이 시즌이었습니다. bWAR 7.9를 기록했는데, 시즌 WAR이 7을 넘은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입니다. OPS+ 154도 최고 기록으로, 시즌 OPS+가 135를 넘은 것도 이번 시즌이 처음입니다. 2018시즌 이후 5년만에 MVP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는데 이 역시도 커리어하이입니다.
10년의 커리어에서 기록한 승리기여도는 52.1. 이 페이스라면 명예의 전당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은 것은 MVP 수상과 우승반지 뿐입니다. 수비 실력으로 WAR을 아주 많이 적립하는 아레나도의 플레이 스타일은, 높은 승리기여도에 비해 MVP 투표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아무래도 스타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투표에서, 타격 성적이 수비에 비해 더 큰 고려가 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올 시즌과 비슷한 성적을 올린다면 MVP 수상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올해는 팀 동료 폴 골드슈미트가 타율-홈런-타점 3관왕에 도전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인트루이스는 여전히 우승 도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MLB Network에서는 현재까지 세인트루이스의 전력을 5위에 놓았는데 우승이 충분히 가능한 순위입니다. 몰리나가 은퇴했지만, 몰리나 자리에는 완벽한 대안인 윌슨 콘트레라스가 새로 영입되었습니다. 승부를 볼 수 있는 전력은 충분히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스포츠였다면 아레나도의 계약은 소위 말해 “페이컷”이라고 불리며 타 팀의 비판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NBA에서는 선수가 팀의 전력보강을 위해 의도적으로 연봉을 줄이는 행위가 비일비재했고 그 때마다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우승 횟수 또는 우승 유무가 선수의 평가에 있어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전력 보강을 위해 팀에 연봉 일부를 양보하는 행위가 잘 일어나지도 않고 설사 일어나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아레나도의 통큰 양보로 카디널스는 단순히 최고의 3루수를 1년 더, 그것도 저렴한 연봉으로 기용할 수 있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1년의 계약기간이 연장되면서 사치세 계산에 있어 구단에 더 유리한 구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치세는 계약 내용과 상관없이 계약 기간 전체의 평균 연봉을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아레나도의 1년 추가는 앞으로 계산될 사치세에 대하여 분모는 늘리고 분자는 상대적으로 덜 늘리는 구조로 재편되었습니다. 기존의 사치세 기준 연봉은 3250만 달러였는데, 현재는 3050만 달러입니다. 여기에 콜로라도에서 받는 연봉보조가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2023시즌에는 1450만 달러만 사치세 계산에 반영됩니다. 이렇게 아끼게 된 사치세 분량은 다른 선수의 보강에 알차게 쓰일 것입니다. 현재 카디널스의 예상 사치세 기준 연봉은 1억7860만 달러로, 사치세 부과 기준인 2억3300만 달러까지는 5430만 달러의 여유가 있습니다.
아레나도가 우승 반지를 낀다면, 세인트루이스에서 영구결번은 물론이고 명예의 전당 입성도 무난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레나도의 대인배스러운 면모가, 세인트루이스 팀의 결실을 맺는 마지막 퍼즐이 되어줄지 궁금하네요.